네이버에서 찾아본 초등 명화 미술관 에는 이렇게 나와있네요.
1. 작품 설명
남녀가 황금빛 옷과 장식에 둘러싸여 입맞춤을 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2. 명화 이야기
이 작품은 클림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에요. 클림트가 사랑하는 연인 에밀리에를 꼭 안고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어요. 두 사람을 둘러싼 황금빛 천에 여러 가지 무늬가 잔뜩 그려져 있어요. 남자의 옷에는 네모난 무늬가 그려져 있고, 여자의 옷에는 동그란 무늬가 그려져 있어요. 몸은 화려한 장식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고 얼굴과 손, 그리고 발만 보여요. 하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만으로도 사랑의 환상이 느껴져요.
3. 화가 이야기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클림트가 금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든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고도 해요. 그리고 클림트가 살던 시대의 빈에는 예술과 문화가 꽃피고 거리에는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그래서 클림트의 그림이 더욱 화려해졌어요.
4. 화법 이야기
클림트는 계란을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과 금박과 은박을 꿀이나 아교 등의 접착제로 붙이는 방법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사람의 몸과 배경이 온통 장식적인 무늬로 뒤덮여 있어요. 그래서 그림이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네이버 지식백과] 키스 [The Kiss] -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천재학습백과 초등 명화미술관)
또다른 검색으로는
1900년, 빈 분리파 그룹 내에는 글래스고 4인조도 끼어 있었다. 영국의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를 비롯한 3명의 예술가에 의해 결성된 글래스고 4인조는, 유럽 미술 및 공예운동의 행보에 크게 기여한 미술가 그룹이었다. 비록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1905년 분리파 그룹을 떠났다 할지라도, 그는 매킨토시의 아내 마가렛 맥도날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준보석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맥도날드의 양식은 클림트의 화풍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클림트가 그린 많은 주제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02년 완성된 <베토벤 프리즈>의 마지막 패널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 중 한 대목인 '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클림트는 실러가 사용한 넓은 의미의 정치적 수사를 좀 더 개인적 의미의 어떤 것으로 대체해 놓았다. 그는 또 그 의미를 여성의 자궁 같은 공간에서의 포옹으로 뒤바꿔 버렸는데, 이는 <키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자의 드레스에 두드러지는 원형의 생물 형태와 남자의 옷에 보이는 힘찬 직사각형 장식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이 모든 장식은 클림트 개인의 상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이미지는 너무 유혹적이라서 우리는 클림트의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원시 표현주의 같은 요소들을 놓치기 쉽다. <키스>에서 흉측하게 굽은 여자의 발가락과 일그러진 손, 부패 중임을 암시하는 오싹한 피부색 등은 클림트의 원시 표현주의를 보여 주는 대표적 요소들이다. 관람자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식적 · 관능적 과도함 역시 클림트 예술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주의 양식은 당대인의 반감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키스 [The Kiss]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2007. 8. 20., 스티븐 파딩, 하지은, 한성경, 제프 다이어, 더 브릿지먼 아트 라이브러리)
곽티슈 케이스, 아파트 로비에 걸려있거나 가전제품등에서
보았던 그림입니다.
많이 보아서 낯은 익지만 직접 찾아보기 전에는
그림의 제목도 몰랐네요.
19세기말~20세기초 까지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활동학 작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초상화와 누두그림, 금색을 사용한 화가로 유명한데요.
클림트의 그림중에 가장 유명한 세가지 작품입니다.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유디트
클림트는 특유의 반항적,회의적 주제 의식을 보여줘 비난과 동시에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20세에 들어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빠르게 기존 회회를 대체하게 되면서
클림트 이후의 작가들은 클림트와 같은 그림을 많이 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클림트 14살인 1876년에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한 후 장식회화가로
교육받고,동생 에른스트클림트,동료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공방을 세우고
건축물 벽면의 회화 작품등을 제작하는데 사실적 화풍을 보여주었습니다.
19세기 말 인상파와 같은 아방가르드 미술들을 접하게 되고
오스트리아의 미술 보수성에 반발하며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클림트의 작품중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한때 가장 비싼
미술 작품이었습니다.
클림트의 후원자이기도 한 아델레에게 초상화를 선물했는데
아델레가 사망한 후 남편이 이 그림을 나치에게
몰수 당했고, 남편은 조카에게 그림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습니다.
나치에 부모를 잃고 미국으로 갔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초상화를 소장한 오스트리아 정부에게서
반환받기 위해
소송을 걸었고 결국 초상화는 노이에 갤러리(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옆)에 소장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습니다.
클림트의 또다른 작품 유디트도 있습니다.
2023.12.09 - [명화알아가기] - 명화- 미술 이야기, 그림이야기, 카라바조 유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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